대중문화 속 AI
인공지능이 맥주 양조에 혁신을 부른다면?
2019/02/26 by 이수경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시대

“오늘날 시판되는 거의 모든 식음료품은 형편없어 보인다. 말 그대로 나를 위해 제작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 본거지를 둔 스타트업인 애널리티컬 페이버 시스템즈(Analytical Favor Systems)의 설립자 겸 CEO인 제이슨 코헨(Jason Cohen)은 영국 가디언즈(The Guardian)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날 식음료 제품이 대량 생산되는 방식을 한 번 살펴볼까요? 과자와 요거트, 아이스크림, 맥주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개개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되는 제품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단일 제품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합니다. '소비자=시장'이라는 등식에 따라 생산된 제품은 모두가 좋아할 것 같은 제품처럼 보이지만, 그 제품을 진정 원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죠.

맥주도 그렇게 생산되는 제품군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두 기업이 복점하다시피했어요. 음식점을 통해 판매되는 국내 술 유통 구조상 제품 개발보다는 마케팅과 영업력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 기호에 맞춰 다양한 맛의 맥주가 제대로 개발될 리 만무하겠죠?

그러다 2002년 브루펍(brew pub)[1] 허가, 2014년 소규모 양조장에서 제조한 수제 맥주(craft beer)[2]의 외부 유통 허용, 2017년 소규모 맥주 제조자도 소매점 유통이 가능해지는 등 소규모 맥주 제조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취향 따라 선택하는 맥주 소비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죠. 그 덕분에 '좋은 맛’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맥주가 기호 식품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이 해가 거듭될수록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배경입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전세계 1만 9,000여 개의 양조장 중 94%가 수제 맥주를 생산할 정도로 수제 맥주 춘추전국시대에 접어 들었죠.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각 양조장에서도 개성 넘치는 수제 맥주 개발 및 제조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브루어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양한 맛의 맥주를 선보이는 시도가 이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맥주 샘플의 향미를 빠르게 평가하거나 고객의 취향을 저격하는 맥주를 만들려는 목적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사례를 한 번 살펴볼까요?

고객의 맛 평가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인텔리전트X(IntelligentX)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인 인텔리전트X는 블랙AI, 골든AI, 페일AI, 엠버AI 등 총 4가지 종류의 맥주를 생산합니다. 인공지능은 사용자 취향에 딱 맞는 맥주 제조법을 개선하죠.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맥주를 마신 소비자는 병에 붙여진 라벨에 안내된 링크에 접속해 페이스북 메신저 앱의 인텔리전트X 봇 대화창을 엽니다. 소비자는 맥주 맛과 선호에 기초한 10개의 객관식 질문에 대답하죠.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이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의 선호를 파악합니다. 지금까지 이 링크에 접속한 고객 80%가 1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제공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결과를 실제 양조 과정에 반영하면 고객이 더 좋아하는 맛의 맥주가 생산됩니다. 인텔리전트X는 서비스 개시 후 12개월가량 간 맥주 제조법을 11번이나 개선했습니다. 한 예로, 회사 측은 페일AI에 사용하는 홉의 양을 늘렸습니다. 이는 고객이 강렬한 홉 향미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통찰한 덕분이죠.

맥주의 향미 감별 센서 개발 착수에 나선 칼스버그(Carlsberg)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칼스버그 연구실(The Carlsberg Research Laboratory)은 3개년 맥주 지문 채취 프로젝트(The Beer Fingerprinting Project)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루스 대학(Aarhus University), 덴마크 기술 대학(The Technical University of Denmark)과 협력하고 있죠.

칼스버그 연구실에서 효모 및 발효를 담당하는 요헨 포스터(Jochen Förster)는 “맥주의 향미를 즉각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기술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칼스버그 연구실은 매일 1000개가량의 맥주 샘플을 만들어내지만,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맥주 샘플을 빠르게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죠. 이에 포스터는 새로운 맥주를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부연합니다.

[ 그림 1 ] 칼스버그에서 생산하는 4종류의 맥주

프로젝트 초기에 만든 솔루션은 칼스버그, 투보그(Tuborg), 위브로 필스너(Wiibroe pilsner), 무알코올 음료인 노르딕(Nordic) 등 총 4가지 맥주의 향미를 감별해 냅니다. 이 작은 성공을 기점으로 공동 연구팀은 맥주의 맛과 향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하게 가려내는 첨단 센서를 활용해 맥주 지문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에 매진한다는 계획입니다.

최고의 IPA를 만들려는 시도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챔피언 브루잉(Champion Brewing)은 머신러닝 회사인 메티스 머신(Metis Machine)과 협력해 최고의 IPA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머신러닝을 활용했습니다.

연구팀은 최상의 ABV(알코올 도수), IBU(쓴맛의 정도), SRM(색깔의 정도) 조합을 찾고자 시중에 유통되는 IPA 제품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내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인기 있는 10대 IPA와 가장 인기가 없는 10대 IPA에 관한 데이터를 모았죠. 그런 뒤 3가지 요소를 조합해 미국 최고의 IPA를 만드는 기계학습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전형적인 IPA 스펙트럼의 중간(6% ABU, 60 IBU, 6 SRM)에서 최고의 IPA 조합을 찾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맥주에 대한 소비자 별점을 예측하는 기계학습 모델인 ‘맥주 인공신경망(ANBN, artificial neural beer network)’도 개발됐습니다. 통상적으로 알코올 도수와 평가는 상관관계에 놓여 있죠. 그렇다면 도수가 같은 맥주는 평가 점수도 같을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험자는 알코올 도수 외 맥주에 대한 평을 가르는 요소를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실험을 진행하죠.

개발자는 브루독(Brewdog)의 무료 맥주 레시피와 맥주 평가 웹사이트인 언탭트(Untappd)의 별점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250개의 레시피와 250개의 평가 데이터를 수집했죠. 보통의 인공신경망 학습에 5만 개의 데이터가 활용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데이터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개발자는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주요 특징(feature)를 뽑아 네트워크를 학습시켰습니다. 그 결과, ANBN은 언탭트에서 3.83/5의 평가를 받은 펑크 IPA(punk IPA)의 만족도를 3.77도로 예측합니다.

수제 맥주 이름을 만드는 신경망

매년 더 많은 양조장에서 생산해낼 수제 맥주의 가짓수를 고려한다면 맥주에 붙일 특색있는 이름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서로 다른 양조장에서 같은 이름을 붙인 맥주를 판매한다면, 최악의 경우 지리멸렬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죠. 수제 맥주 상표에 관한 소송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국 IT 전문 매체 기즈모도(Gizmodo)의 에디터인 라이언 만델바움(Ryan Mandelbaum)은 맥주 이름을 생성하는 네트워크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여기에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신경망을 다수 만들어본 경험을 갖춘 연구원인 저넬 셰인(Janelle Shane)도 참여했죠.

보통 같은 종류의 맥주의 이름은 일정한 명명 규칙을 따릅니다. 이름만 보고도 IPA인지, 페일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소리죠. 이들은 맥주 평가 사이트인 비어애드보케이트(BeerAdvocate)에서 수십만 개의 맥주 이름 데이터셋을 획득합니다. 이 데이터 셋은 90종 이상의 맥주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었죠. 셰인 연구원은 char-RNN을 활용해 수제 맥주를 생성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당 리버(Dang River), 토 딜(Toe Deal), 어스 펌프(Earth Pump), 헤븐 캣(Heaven Cat), 하트 컴포스트(heart Compost) 등과 같이 시중에서 판매될 법한 맥주 이름이 생성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는 더 좋은 맛의 맥주를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맥주 양조 기술 습득에만 10년 이상 걸립니다. 어떤 원료를 배합하느냐, 어떤 기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달라지죠. 발효 과정의 작은 차이가 결과물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3]. 아트몬스터 박재우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맥주 맛은 기계 장비의 성능이 30%, 사람의 기술력이 70%를 결정한다"고 말할 정도로 맥주를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맥주 제조법을 새롭게 고안하거나 그 향미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과정은 확실히 녹록지 않은 축에 속합니다. 인공지능이 신제품 개발이나 테스트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촉망받는 이유죠.

갓 생산된 맥주의 맛을 테스트한 뒤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양조업자가 간절히 원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널리티컬 페이버 시스템즈가 만든 가스트로그래프(Gastrograph)는 자극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을 모델링한 것으로, 맥주 한 모금 분량으로 제품 결함을 발견합니다. 창업자인 코헨은 “절대적인 맛은 변하지 않지만, 그 맛에 대한 인식은 변한다”며 “나이, 성별, 인종, 과거의 맛 경험 등 맛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24가지 독립적인 속성을 파악했다”고 말합니다.

코헨은 2~3온스(57~85g) 분량의 온갖 종류의 맥주를 무료로 제공하며 맛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이 데이터에서 신선한 잔디 맛이 나는 맥주에 시스-3-헥센-1-올이라는 화합물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죠. 이런 현상은 홉이 오래됐을 때 발생합니다. 가스트로그래프는 또는 햇볕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돼 마치 거름 같은 맛이 나는 맥주도 구분하죠. 이런 결과 도출 방식은 제조 및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점검함으로써 품질 유지 및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한편, 많은 소비자의 반응을 읽고 이를 제품 개선에 반영해나가는 것 자체가 인공지능 브루어리 시스템의 핵심 역량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 데이터를 빠르고 신속하게 모으는 건 물론, 방대한 데이터에서 통찰력까지 얻을 수 있는 환경적 토대가 잘 마련된 덕분이죠. 지금까지 맥주 제조사가 상품개발과 개선을 목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광고 집행 및 마케팅 효율화 측면에서 데이터를 분석했을 뿐이죠. 하지만 알맹이(제품)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세련된 광고라 하더라도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기 힘들 것입니다. 인텔리전트X의 공동 창업자인 휴 리스(Hew Leith)가 창업을 결정한 배경이기도 하죠.

휴 리스는 “제품의 광고를 바꾸는 데 아니라 제품 자체를 바꾸는 데 데이터를 활용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합니다. 앰버AI의 한 버전에 자몽이 포함된 적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맥주를 마셔본 경험이 있다면 익숙한 맛이겠죠? 리스는 "고객의 피드백은 매우 확실한 영향을 미쳤다"며 "덕분에 알고리즘은 맥주를 제조하는 데 있어서 과일을 첨가하는 편이 좋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휴 리스는 인공지능이 고객 의견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공지능은 마치 모든 소비자를 맥주 제조자와 같은 방에 두는 것과도 같다”며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시간 소모적인 작업이지만 인공지능은 자료를 모으고 해석하는 일을 간소화해준다"고 덧붙입니다.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제품 개발의 효율화라는 점에서 보자면 인공지능은 맥주 양조뿐만 아니라 다른 식음료 개발 프로세서의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됩니다. 페이스북(Facebook)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소비자가 원할 법한 상품을 광고하고자 소비자의 온라인 행동을 관찰하듯이, 향후 식품 회사도 소비자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거죠. 수제 맥주 품질 관리 프로그램인 가스트로그래프가 향이 첨가된 물(flavored waters), 초콜릿, 짭짤한 스낵(salty snacks) 등 12개 제품의 맛을 개선하는 데도 활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AI,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 지도를 그려낼 것"

물론 인간이 섭취할 음료와 음식 레시피를 인공지능이 만든다는 것에 회의적인 시선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영국의 리얼 에일 캠페인(CAMRA)은 인간 양조자의 기술과 창의성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이 훌륭한 맥주 향미 조합을 골라낸다는 아이디어에 불편함을 표했죠.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직접 닿아야만 하는 작업이 허다합니다. 실제로 좋은 맛을 내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숙성 및 살균 등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죠. 제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더라도 공정 과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맛의 성패가 크게 갈릴 수 있습니다. "맥주 양조의 80%는 살균 위생, 나머지는 20%"라는 말에서 보듯이, 살균 및 위생 관리가 철저해야 맥주의 맛과 신선함을 겨우 유지할 수 있습니다.

메티스 머신의 데이터 과학 엔지니어인 타일러 허처슨(Tyler Hutcherson)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지능으로 완벽한 맥주를 양조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긴 했지만, 양질의 맥주를 만드는 데 따르는 고된 작업이나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이유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맛을 만들어내는 그 시도마저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맛이라는 감각적 공간은 사실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공지능은 애초에 완벽한 맥주 제조를 최종 목표로 두지 않죠 대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맛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향미를 갖춘 맥주를 만들어가는 여정에 필요한 나침반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듯 싶습니다. 이 나침반을 들고 미개척된 맛 지역을 탐방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일 거고요.


참고
[1] 영업장 내에서 소량의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2]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소량 생산하는 맥주
[3] 도서 <프루프 : 술의 과학>
이 글을 쓴 사람들
samantha.lee
이수경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펼치는 세기의 대결을 두 눈으로 목도한 이후 인공지능을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인공지능 본진이자 연구소인 카카오브레인으로 걸어들어온 이유죠. 인공지능 기술과 이로 인해 바뀔 미래 사회를 다루는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